아찌꼬마

아찌와 꼬마의 일상

토끼를 위하여

3. 타임머신 / 아빠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정-안식년

제주형 2016. 4. 22. 23:33

일본 나리타공항.
아무리 찾아 봐도 수도꼭지에서 물을 틀을 수 있는 손잡이가 없다.
다시 둘러보아도 누르는 버튼도 없다.
‘손을 닦고 싶은데 어떻게 물을 틀지?’
세면대 앞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이리 저리 수도꼭지 주변을 쳐다보고 있는 나의 어깨를 정복을 한 공항경찰이 두드렸다.
그리고, 옆에 세면대로 가더니 ‘잘 보라’는 표정으로 자기 손을 수도꼭지 아래에 가져다 놓았다.
물이 나온다.
일본에서 만난 수도꼭지는 센서로 되어 있었다.
하와이에서 샤워를 할 때는 문제가 없었다.
우리나라처럼 좌우로 돌리면 되던지 시계방향으로 틀면 되었다.
산호세에서는 또 문제가 생겼다.
아무리 돌려도 물이 나오질 않아서 룸서비스를 불렀다.
세상에...
이곳의 수도꼭지는 앞으로 잡아 당겨야 물이 나왔다.
‘어디는 눌러야하고..., 어디는 당겨야 하고..., 어디는 돌려야 하고.., 내~ 원~ 참~ ^^;;...’
1996년 12월1일에 원천교회에 부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만7년이 넘어섰고, 교회에서 6월 한달 동안 안식년 휴가를 주셨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서 아쉬워하는 아내에게 ‘이 다음에 우리 아이를 데리고 여기에 꼭 한번 더 오자’고 약속했던 기억이 나서 휴가기간 동안 미국을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처음 1주일은 하와이에서 신혼의 추억을 되새기며 보냈다.
그리고, 비행기로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최신형 관광버스를 타고 산호세, 캘리코 은광, 요세미티 국립공원, 그랜드캐년, 라플린, 라스베가스, LA시내, 유니버셜 스튜디오, 디즈니랜드, 등을 돌아보며 미국 서부일주를 마쳤다.
마지막 1주일은 UC DAVIS에서 유학중인 범주네 집에서 묵으면서 북 캘리포니아 지역의 정취를 맛볼 수 있었다.
사실 범주의 전화번호를 메모해서 미국에 왔는데, 계속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아서 걱정을 하면서 LA에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하와이에서 전화를 해도 되지 않고, 여행 중간 중간에 열심히 전화를 했는데도 연결이 되질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와서도 범주와 통화가 되지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 짐을 찾으러 갔는데, 그곳에 범주가 서 있었다.
“너 왜 미국 오면 전화한다더니 전화도 안 하냐?”
“너희 집 전화요금 못 냈냐? 왜 전화가 연결이 안 돼?”
서로 이상해 하면서 확인해 본 결과 내가 적어 가지고 간 전화번호 끝자리가 잘못 적혀 있었다.
그런데도 범주는 ‘헛걸음을 하더라도 내가 2~3시간정도 수고하는 게 낳지, 혹시 주형이와 가족들이 예정대로 왔다면 연락하지 못한 무슨 사정이 있을 텐데 얼마나 당황하겠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한달 전에 메일로 보내면서 적어준 여행 계획과 자기집에 오기로 한 예정 날자와 예정 항공편을 확인하고 무조건 공항에 나와서 기다려 준 것이었다.
역시 나의 친구다.
얼마나 고맙던지...
범주의 처인 윤미씨와 아들 준호,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딸 연재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범주 가족들 덕분에 우리는 여유 있는 시간들을 즐기면서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했다.
‘Farmer?s Market’에서 캘리포니아 과일들을 사서 맛보았고, ‘Garage sale’을 돌아다니면서 민희와 준호에게 장난감이나 책 같은 것들을 사 주었다.
자기가 쓰다가 필요 없는 것들을 깨끗이 손질해서 직접 집 앞에 놓고 판매하는 것을 적은 돈으로 장만할 수 있는 것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아이의 물건은 아이가 직접 팔게 하고, 돈도 직접 받게 하는 미국 부모들을 보면서 좋은 교육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민희가 필요한 것을 직접 고르게 하고, 직접 값을 치르도록 하였다.
캘리포니아에만 있다는 햄버거를 먹으러 가서는 금발의 미국 사람이 연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했다면서 반가워하며 말을 걸어서 한참을 이야기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가 주지사로 근무하고 있는 캘리포니아 시청에도 가보았고, 캘리포니아의 옛 수도인 세크라멘토에도 가 보았다.
이곳에서는 주차를 하다가 50센트를 주워서 ‘외화를 벌었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주일에 교회에 갔을 때는 그 날이 ‘Fathers' Day’라고 해서 볼펜을 선물로 받았다.
그 날 저녁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 효원이와 은영이를 역시 이곳에서 유학중인 문영부 장로님의 둘째 아들 정현이와 함께 데이비스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산호세에 와 계신 유복순 권사님의 초대를 받게 되어서 계획을 바꾸어 산호세로 우리 가족과 범주의 가족, 효원이, 은영이, 정현이 모두가 모였다.
이날은 정말로 근사한 저녁식사를 대접받았고, 레스토랑에서 ‘Fathers' Day’ 선물로 넥타이도 받았다.
“나는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했는데, 어떻게 주형이가 아는 사람이 더 많네...”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가진 범주의 말이다.
United Airline으로 출발한 안식년 휴가는 정말로 특별한 추억들이 많았다.
미국행 비행기 안에서 술에 만취한 한국인 여행객을 일본인 승무원들이 말도 통하지 않고, 감당이 되지 않아서 당황하고 있을 때, 사태를 수습해 주었던 일...
나는 정신을 잃은 남자를 얼음물로 정신차리게 하고, 화장실로 데려가서 토하게 하고, 자리를 확인해서 앉혔다.
“You're a doctor?"
얼음물을 달라, 산소를 달라, 부축해 달라, 여러 가지를 주문하는 나를 승무원들은 의사인줄 알았다.
"No! I'm a korean"
그러나, 나는 단지 외국인들 앞에서 이리저리 기어다니다 드러누워서 정신을 잃어 가는 같은 한국 사람의 창피한 모습을 빨리 수습해 주려고 한 것뿐이었다.
“korean?"
의사냐는 질문에 엉뚱하게 한국사람이라고 대답을 하자 못 알아듣던 승무원들은 이내 ‘취해서 정신을 잃은 사람이 당신과 같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도와주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이 일로 하와이로 향하는 12시간 동안 우리 가족과 승무원들은 친구가 되었다.
United Airline으로부터 멋진 병에 담긴 고급 와인을 선물로 받았고, 공항에 도착해서도 다른 승객들이 다 내린 후에야 승무원들과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민희는 미국 서부 일주를 하는 동안 함께 여행을 하게 된 분들에게 옷이며, 인형이며, 먹을 것들을 아주 많이 선물로 받았다.
심지어는 가이드까지 민희에게 선물을 사 주었다.
처음에는 아빠에게 물어본 영어를 하기 쑥스러워했던 녀석이 몇 일이 지나면서는 아무에게나 콩글리쉬를 구사하며 오히려 아빠․엄마보다 용감해졌다.
수영장에서는 친구까지 사귀어서 그 아이의 엄마에게 과일과 쥬스를 얻어 오기도 했다.
“이거 어디서 났니?”
“엄마! Thanks you! 했어~”
점점 더 넉살이 좋아진 민희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무데서나 “hi!, excuse me!, Thanks you!”를 연발하면서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서 “mammy"를 불렀다.
그 바람에 아무튼 우리는 어디서나 모든 공연을 제일 앞자리에서 보았다.
라스베가스에서 분수 쇼를 볼 때는 자리를 양보해 준 멋지게 생긴 노년의 아저씨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지...?’, ‘도대체 말이 통하기는 하는지...?’
아무튼 그 아저씨는 ‘꼬마 숙녀 덕분에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하면서 기분 좋게 민희와 작별인사를 하였다.
거의 매일 바뀌는 모든 호텔의 수영장에서 밤․낮 구별 없이 시간만 나면 물놀이를 한 민희...
호텔 객실에 있는 모든 서랍을 열어서 정리하고, 모든 집기들을 자기 마음에 들게 다시 배치하고, 모든 홍보물들을 섭렵한 민희...
언제나 아빠에게 안기거나 목마를 타거나 등에 업혀서 여행을 한 공주님 민희...
차안에서는 쿨쿨 자고, 식당에서는 밥 한 공기를 썩썩 먹어 치우면서 어른들보다 더 즐겁게 여행을 한 민희...
그래서 함께 여행하는 어른들에게 ‘신기한 아이’라며 더욱 이쁨을 받았던 민희...
민희는 지금도 아빠의 휴가가 한 달 인줄 안다.
그리고, 미국에 또 가고 싶다고 한다.
얼마 전부터는 영국에 가자고 한다.
그러더니 지금은 중국부터 가자고 한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고, 들은 나라들을 기억하며 ‘가고싶다’고 말하는 민희...
그만큼 민희가 많이 큰 것이겠지...!
행복한 추억과 함께 민희가 자랄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