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왜 거짓말해?”
“우리 아빠는 거짓말하는 거 제일 싫어해!”
“그리고 우리 아빠는 찡얼찡얼 하는 거 제일 싫어해!”
“너희들 우리 아빠가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우리 아빠 화나면 잣대기 부러지게 때린단 말야”
“그~치~ 아빠!”
고만 고만한 녀석들끼리 놀다가 무엇인가 자기 맘에 맞지 않으면, 으레 민희 녀석이 세(勢)를 과시하기 위해 하는 말이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민희는 처음으로 열(熱) 감기를 심하게 앓았었다.
내가 금요일 철야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1시.
이날 나는 비상 깜빡이를 켜고, 야간 순찰 중인 경찰차를 추월하며 인하대학병원 응급실까지 달렸다.
단순한 열(熱) 감기였지만 이 후로도 민희는 감기가 걸리면 열(熱) 때문에 고생하는 일이 많았다.
민희는 어려서부터 속이 깊은 아이다.
다른 아이들 같으면 벌써 울고 난리가 날 정도로 아파도 엄마․아빠가 걱정할까봐 참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초희 돌잔치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연남동을 통과하고 있는데, 민희가 다급하게 아빠를 부르더니 까무러쳤다.
순간 몸이 뒤틀어지면서 경직되고, 숨을 쉬지 않고, 경련을 하는 민희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근처에 있는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향해 무조건 중앙선을 넘어 차를 돌렸다.
연말의 술렁거림 때문인지 평소에도 잦은 정체를 빚는 연희교차로 부근이 늦은 시간임에도 완전히 주차장처럼 되어 있었다.
반대 차선은 그래도 조금 낳아 보였다.
다시 중앙선을 넘었다.
비상 깜빡이를 켜고, ‘빵빵빵빵’ 경적을 울리고, 라이트를 쉴새 없이 상․하향으로 깜빡이면서 마주 오는 차들을 피해 단숨에 응급실에 도착했다.
40℃가 넘는 열(熱)이 계속 나는데도 이 녀석이 저녁시간 내내 참다가 결국 경끼(驚氣)를 한 것이다.
아이에게 좀 더 세심한 주위를 기울이지 못한 것이 너무 미안하고, 가슴아팠다.
그래서인지 이후로도 민희가 감기에 걸리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열(熱)이다.
민희가 다섯 살 때의 어느 날.
이 녀석이 또 열(熱) 감기에 걸렸다.
집사람은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로 계속 닦아주면서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먹이려고 하는데, 이 녀석이 오늘따라 입을 꼭 다물고 몸부림을 치면서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하였다.
어떻게든 약을 먹이려고 하는 엄마와 엉엉 울면서 안 먹으려는 아이의 씨름 도중에 몇 봉지의 약을 쏟고 말았다.
평소에 아빠 말이라면 ‘꾸뻑’ 하는 녀석인지라 내가 안고 약을 먹이기로 했다.
그런데, 이 날은 소용이 없었다.
큰 소리로 울고, 몸부림치면서 열(熱)만 더 오르고 있었다.
‘체온이 38℃ 이상이 되면 언제든지 경끼(驚氣)를 할 수 있다는데...’
차안에서 경끼(驚氣) 하던 민희이 모습이 떠오르면서 ‘빨리 약을 먹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급한 마음에 30㎝ 길이의 플라스틱 자를 들고 겁을 주었다.
“빨리 약 먹지 않으면 맴매한다.”
“빨리 먹어. 어서”
그러나, 민희 녀석은 슬금슬금 눈치를 보면서도 ‘설마 아빠가 진짜로 때리지는 않겠지!’ 하는 눈치다.
아무리 둘러 봐도 때릴 구석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녀석의 발을 잡아 올렸다.
“빨리 먹어. 진짜로 맴매한다!”
“빨리 먹어~”
“이놈의 시끼~”
어쩔 수 없이 힘껏 발바닥을 내리쳤다. 어설프게 때리면 소용이 없다는 생각에 정말로 세게 때렸다.
‘짜~악’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자가 부러졌다.
민희는 눈이 동그라졌다.
맞은 매가 아픈 것보다 ‘짜~악’ 소리와 함께 부러져서 날아가 버린 자 때문에 더 놀란 모양이다.
“이놈의 시끼~ 빨리 안 먹어~?”
새로 자를 가져다가 다시 발바닥을 힘껏 때렸다. 이번에는 자가 아예 산산조각이 났다.
너무 놀란 민희는 순식간에 약을 먹었다.
다행히 열은 내렸지만 놀란 가슴으로 울다가 지쳐서 잠이 든 딸의 발바닥에 빨갛게 새겨진 매맞은 자국을 보면서 나는 울고 말았다.
...‘다시는 아이를 때리는 일은 하지 말자.’
그리고,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이번에는 내가 심한 몸살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평소에는 아픈 곳이 생겨도 집에서 버텨 보다가 좀처럼 낳지 않으면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다 먹는 정도로 아픈 것을 툭툭 털어 버린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로 심하게 아파서 약을 지으러 갈 수조차 없었다.
집사람이 약을 지어 와서는 일어나서 약을 먹으라고 한다.
눈을 뜨는 것도 귀찮아서 나중에 먹겠다고 했다.
지금 먹으라고 조르는 집사람 옆에 있던 민희가 방을 나갔다가 들어와서는 내 발을 붙잡고 큰 소리로 말했다.
“이놈의 시끼~ 아빠야!”
민희의 손에는 30㎝짜리 플라스틱 자가 들려 있었다.
눈을 뜨지도 못하던 나는 아이 때문에 한바탕 웃고는 몸살 감기를 그 날로 툭툭 털어 버렸다.
지금도 민희는 ‘아빠한테 혼이 난적 있느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네!”
“다섯 살 때 한번 혼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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