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내가 라면 끓여 줄까?
민희가 여섯 살이 된 어느 날 점심때의 일이다.
일찍부터 자기 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엄마에게 배워온 민희는 다섯 살이 되기 전부터 이미 자기 방 정리를 하는 일이나, 볼일을 본 후의 뒤처리 정도는 스스로 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유치원에 처음으로 다니기 시작한 다섯 살 때, 이미 유치원 선생님들을 놀라게 했다.
선생님들은 곧잘 전화를 해서 다른 아이들은 아직 하지 못하는데, 민희는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엄마에게 이야기를 했다.
“민희가요 화장실 가서 응가를 하고, 혼자서 뒤처리까지 다 했어요”
“민희는 정리 정돈을 잘 해요”
“…, …, …”
그런데, 오늘은 아빠가 놀라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어린 딸이 라면을 끓여 준다고?’
민희는 은행 일도 혼자서 척척 해결한다.
집사람은 우리 집 바로 옆에 있는 신용협동조합에 2003년11월28일에 민희의 이름으로 통장을 개설해 주고, 스스로 저금을 하게 하면서 때마다 신선한 목표를 갖게 했다.
민희의 목표는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때는 ‘갖고 싶은 것을 사기 위해 저금한다’고 하고, 어떤 때는 ‘영국에 가고 싶어서 저금한다’고 하고, 어떤 때는 ‘아빠에게 선물을 사주려고 저금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집사람이 몰래 민희 뒤를 따라 가면서 ‘가는 길에 안전하게 행동하는지?’, ‘은행 볼 일을 제대로 하는지?’ 확인을 했는데, 얼마 후부터는 ‘믿을 만 하다’고 하며 정말로 혼자 은행을 다니게 하였다.
조그만 녀석이 혼자 통장을 들고 와서 번호표를 뽑고, 의자에 앉아 있다가 전광판에 자기 표와 똑같은 숫자가 나오면 벌떡 일어나서 창구로 나오는 것이 얼마나 예쁜지, 민희는 신용협동조합 언니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고, 언제나 VIP 대접을 받았다.
민희는 아빠․엄마에게 받은 100원, 200원을 열심히 모아서 저금을 한다.
그리고, 매달 엄마 대신 공과금을 내러 가서 말한다.
“남는 돈은 다 내 통장에 넣어 주세요”
남는 돈이라는 것이 겨우 몇 십 원이나 몇 백 원 이었지만, 민희는 자기 통장에 새로운 숫자가 찍히는 것이 마냥 즐겁고 행복하다.
그리고, 저금할 때마다 언니들의 자리까지 초대받아서 함께 나누어 먹는 사탕이나 음료수, 빵 같은 것들도 너무 재미있어하고 좋아한다.
은행이 바쁘지 않은 날은 언니들이랑 한참을 놀다가 오기도 한다.
민희는 병원에도 혼자 가서 진료를 받는다.
은행에 다니면서 자신감을 얻었는지, 어느 때부터는 병원도 혼자 가겠다고 엄마를 조른 결과 허락을 받은 것이다.
물론, 엄마는 민희가 병원에 들어갈 때까지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고, 병원에 전화를 해서 간호사에게 미리 부탁을 해 놓는다.
“혹시 잘 모르는 거나, 무슨 일 있으면 1번만 꾸~욱 눌러. 알았지?”
신이 난 민희는 엄마의 핸드폰을 목에 걸고 집 앞에 있는 소래 가정의원에 혼자 가서는 “제민희요”라고 접수를 하고, 진찰실에 들어가서 자기 증상을 말한다.
“열 나고요, 가래 있고요, 콧물 때문에 숨도 못 쉬고요, 기침 많이 해요”
“엄마는 안 오셨니?”
“네”
“기특하네. 엄마 전화번호 좀 가르쳐 줄래?”
말하는 증상이 맞는지를 엄마에게 확인하고 나서야 의사 선생님이 처방을 해 주시면, 민희는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지어 가지고 온다.
민희는 자기가 할 일을 스스로 잘 한다.
월요일에 모처럼 쉬면서 피곤해 하는 아빠에게 ‘걱정하지 말고 푹 자라’면서 혼자 책상에 앉아 유치원에서 내 준 숙제를 하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고, 피아노도 치면서 아빠가 옆에서 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을 한다.
그리고, 오늘은 피곤한 아빠를 위해서 자기가 라면을 끓이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민희는 라면을 끓였고, 아빠는 민희가 처음으로 끓여준 감동의 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한 수 더 떠서 민희는 싱크대 앞에 의자를 받쳐놓고 올라서서 커다란 고무 장갑을 끼고, 깨끗하게 설거지까지 했다.
요즘은 오히려 내가 쓰레기 분리 수거하는 방법과 버리는 방법을 민희에게 물어본다.
민희는 빨리 일어나서 출근하라고, 아빠의 잠을 깨우면서 어깨를 주무르고, 손을 주무르고 두드리면서 어떻게 하면 아빠가 기분 좋게 빨리 일어나는지를 알고 있다.
민희는 ‘욕실에서 나올 때 발수건 정리를 잘하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시범까지 보인다.
민희는 벌써 못하는 것이 없는 척척박사이다.
나는 이제 겨우 일곱 살 밖에 안 된 딸이 이미 다 커버린 것 같아서 뿌듯하면서도 벌써부터 마음속 한 구석에 ‘이 다음에 이런 녀석을 어떻게 시집 보내지?’하는 걱정이 생긴다.
나는 민희 때문에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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