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아내는 들뜬 마음으로 호눌룰루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런데 왜이리 기내가 어수선하지? 잠시 후에 그 이유를 알았다. 자리를 찾아가 보니 아내와 나의 자리가 따로 따로 떨어져 있었고, 주변을 돌아보니 역시 많은 신혼부부들의 자리가 서로 바뀌어서 뒤죽박죽 이었다.
“왜 내 자리를 달라는 겁니까? 나는 창가 자리가 좋아요”
“죄송합니다. 자리 배치에 착오가 있어서...”
“신혼부부들을 같이 앉혀 줄 수 있게 양보 좀 부탁드립니다.”
“이 자리는 나에게 배정된 자리입니다. 나에게 권리가 있다고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이미 당황한 승무원들이 발빠르게 다니면서 자리를 바꾸어주기는 했지만 평소에 눈치 빠르기로 소문난 나의 판단으로는 모든 신혼부부가 쌍쌍이 앉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의외로 자기 자리가 좋다고 고집하는 일본인 아주머니도 보였고, 횡으로는 홀수 배열의 좌석에 아무리 잘 맞춰 주어도 결국 누군가는 홀수자리에 혼자 앉아서 가야했기 때문이다.
나는 아내의 자리 옆에 가방을 얹어 놓고 승무원의 조치를 기다리는 남자에게 다가갔다.
약간은 외소해 보이는 그 남자에게 179㎝의 키에 80㎏인 나는 부드러움을 가장하면서도 약간은 위협적으로 목소리를 깔고 두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거 아저씨가 색시 옆으로 가서 앉으면 되겠네..!”
결국 나는 순탄하게 아내의 옆에 앉았다.
그러나 하와이까지 날아가는 약 12시간정도를 그 남자와 그의 색시는 내가 예상했던 바로 그 케이스가 돼서 서로 다른 줄의 앞쪽과 뒤쪽, 운명의 홀수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남들은 입에 맞네 안 맞네 하면서 기내식사를 남기고, 나에게 친절하게(?) 자리를 양보(?)해 준 그 남자와 색시는 서로 싸웠는지 도통 먹지도 않고 있는 상황 속에서, 한참 식욕이 왕성하고 뭐든지 없어서 못 먹는 나와 아내는 하나 더 주면 안되냐고 묻고, 결국 하나 더 먹었다.
혹시 이것도 그 친절하고 외소한 부부가 양보한 분량이 아닌지?
그런데 문제는 하와이에 도착한 첫 날 밤에 일어났다.
순탄하게 진행되던 나의 신혼여행에서 제일 하이라이트라고 말 할 수 있는 첫 날 밤에, 내가 묵고 있던 호텔에 물난리가 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물난리의 원인도 바로 나였다는 사실이다. 호텔에 들어와서 나는 아내에게 먼저 목욕을 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열린 목욕탕 문안의 뽀얀 수증기 속에서 아름다운 아내가 나왔다.
나는 잠시 후에 있을 환상적인 신혼여행 첫 날 밤을 기대하면서 목욕탕에 들어갔고 욕조에 따뜻한 물을 한가득 받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해외 나들이는 처음이라 미리 사전 지식을 섭렵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목욕탕 바닥에 하수구가 없다는 사소한 것은 왜 몰랐는지?!!!!
부푼 기대감에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시원하게 넘쳐흐르는 물소리를 두 눈을 감고 감상하던 나의 귀에는 욕실 밖에서 황급히 나를 부르는 아내의 소리가 한참 만에야 들렸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연히 하수구멍으로 빠져나가야 할 넘친 물들이 갈 곳을 못 찾아서 객실 안으로 힘차게 힘차게 밀려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좀 전까지의 환상적인 기대는 한순간에 무너지고 나와 아내는 이 급박한 돌발상황을 처리하느라 객실 바닥의 카페트를 걷어올리고, 그래도 수습이 되지 않는 물들을 막느라고 욕실에 있는 수건이란 수건은 모조리 가져다가 댐을 쌓고, 그것도 모자라서 벗어놓은 옷들도 동원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정말로 열심히 맨 손으로 물을 퍼 올렸다.
아~ 나는 그 때 알았다.
80㎏에 밀려난 물들이 그렇게 많은 양인지를....!
그 날 밤.
그렇지 않아도 긴 시간동안 비행기를 타고 왔고, 맘 착하게(?) 자리를 양보해 준 그 외소한 남자와 신경전을 벌이느라 피곤해 있던 나는 열심히 물을 퍼 올리느라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그리고 아내는 포화상태로 물을 머금은 수건을 힘주어 짜서 널고, 역시 배부르게 물을 먹고 트름하는 옷가지들을 도저히 그냥 놓아둘 수 없었는지 그 밤에, 아~ 글세~ 신혼여행지에서의 첫 날 밤에...
새벽까지 열심히 빨래를 하고, 지쳐서 따로 따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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