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도 건축헌금 작정했어”
교회에서 돌아오자마자 형선이는 마냥 신이 나서 말했다.
이 날은 새롭게 교회 건축을 하기 위해 어린이들부터 어른들까지 건축헌금을 작정했는데, 벽돌 한 장 값이라도 헌금하면서 전 교인이 건축에 동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물론 형과 나도 기쁜 마음으로 벽돌 몇 장 값을 헌금하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아직 어려서 숫자 개념이 없었던 막내 녀석이 작정서에 적은 금액은 부모님들과 형들의 것을 다 합친 것 보다 많은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그래도 할거라고 떼를 쓰는 동생을 보면서 어머니는 ‘멋모르고 했지만 형선이가 처음으로 하나님 앞에 작정하고, 그대로 하고 싶다고 저러니 다 함께 도와주자’고 하셨다.
결국, 형선이는 우리 가족 중 누구보다 많은 건축헌금을 했다.
이후에도 형선이는 바르게 믿음으로 잘 자랐고, 중등부 연합회장이 되었다.
이 때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고, 대학 진학을 위한 학력고사를 몇 달 앞두고 있었다.
당시 우리교회는 금요일 철야예배가 은혜롭기로 소문나 있었다.
심지어는 서울에서도 철야예배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분들이 오셨고, 보통 1000명 이상이 매 주 금요일 밤에 함께 찬양하고 율동하고, 간증도 듣고 기도하면서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지 ‘금요일 밤이면 교회 주변에 깡패들이 모여들어서 교회에 오는 여학생들을 희롱하고, 남학생들을 시비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돌멩이를 던지고, 술병을 던지고, 이유 없이 아이들을 때리고, 선생님들이 야단하면 칼을 가지고 위협할 정도로 깡패들의 행동이 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녀석들이 예배당까지 들어와서 우리교회 남학생을 끌고 나가려 했다.
옆에 있던 형선이가 막아서서 그 녀석들을 쫓아내었다.
그 날부터 형선이는 깡패들의 표적이 되었다.
예배가 있는 날이면 깡패들이 떼로 몰려와서 ‘형선이를 잡아 요절을 내겠다’고 난리를 치는 통에 형선이는 벌써 몇 주를 선생님들이 승용차에 태워서 교회로 들어가고, 담을 넘어서 깡패들을 피해 오던지, 선생님들이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
형선이를 위해서도 그렇고, 교회를 위해서도 어떤 방법이던지 해결책이 필요했다.
1주일 정도를 작정하고 기도한 후에 내가 직접 형선이를 구해 내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될까?’
‘되도록 싸움은 하지 않고 끝내야 하는데...’
“하나님 지혜를 주세요.”
“도울 자를 주세요.”
“깡패들을 제 손에 붙여 주세요.”
“형선이를 지켜 주세요. 그리고, 구해주세요”
당시에는 10월1일이 국군의 날 이었기 때문에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9월30일 금요일을 D-day로 잡았다.
인천을 주름잡고 있는 깡패들 중에는 친한 친구들도 많았지만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다짜고짜 싸움부터 하려고 덤벼서 사고가 날 것 같았다.
미리 알아보니 금요일마다 몰려오는 깡패들의 수는 대충 30~40명 정도였다.
고민하던 끝에 영국이에게 ‘함께 운동하는 친구들 중에 실력 있는 친구로 대여섯 명만 데려 오라’고 부탁을 하였다.
영국이는 친한 친구 중에 인천체고에서 태권도, 검도, 유도 선수들을 주장 급으로 데려왔다.
그리고, 한창 태권도와 쿵푸, 권투 같은 운동으로 각각 몸이 단련되어 있었던 지희와 영우, 진욱이가 함께 해 주었다.
EFOS는 겨우 진정시켜서 돌려보냈다.
드디어, D-day.
“아버지! 형선이를 괴롭히는 깡패들이 있어서 제가 좀 만나보려고 하는데, 혹시 경찰서에 가는 일이 생기면 아버지가 해결 좀 해 주세요”
당시 아버지는 인천지역 경우회(警友會) 자문위원이셨다.
많이 걱정은 하시면서도 형선이의 처지가 더 걱정이셨던 아버지는 무언의 허락을 해 주셨다.
“다치는 사람 없이 좋게 좋게 해라.”
엄마에게도 기도부탁을 하고, 집을 나서서 교회로 가는 길에 막내이모 집으로 갔다.
공교롭게 D-day를 앞두고 아버지와 화단 정리를 하다가 중지 손가락을 심하게 다쳐서 오른 손의 주먹이 쥐어지지 않고, 자유롭지 못했는데, 엄마에게 부탁하면 더 걱정하실 것 같아서 이모에게 부탁하여 압박붕대로 주먹 쥔 손을 단단히 감았다.
보통 밤 9시쯤이면 깡패들이 교회 주변에 몰려든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친구들은 8시30분까지 교회로 오도록 하였다.
교회 경비 집사님들께도 ‘오늘은 밖에서 후다닥 소리가 나도 나오시지 말라’고 부탁 드렸다.
집사님들도 ‘괜챦겠냐’고 하시면서도 매 주 칼까지 들고 덤비는 아이들에 대해 속수무책이셨던 터라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다.
민완홍 전도사님께 부탁드려서 교육관 1층의 사무실을 본부로 삼았다.
이날 밤 9시에는 교회 앞에 한 명의 깡패도 보이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밤 12시가 될 때까지도 깡패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밤 12시가 되면서 아래위로 하얀 옷을 입은 사람 세 명이 당당하게 교회로 걸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저 아이들인가?”
나의 말에 태권도 선수인 친구가 밖을 내다보더니 깜짝 놀라면서 말했다.
“저 아이들은 내가 잘 아는 친구들인데, 벌써 조폭이 돼서 마구 칼을 쓰는 칼잡이들이야”
그 친구가 나가서 ‘여기에 어쩐 일이냐’고 물었다.
칼잡이들은 이 동네 깡패들이 ‘자기들을 잡으러 어떤 놈들이 왔는데 제발 도와 달라’고 해서 왔다며, ‘그게 너라면 그냥 갈 테니 서로 좋게 끝내라’고 하면서 돌아갔다.
하나님께 감사했다.
‘깡패들은 겁을 먹고 주변의 골목마다 숨어서 우리들을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잠시 뒤에 복도를 지키며 밖을 관찰하던 친구들이 ‘교육관 한쪽의 교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확인해 보러 갔다.
6명의 남, 여 깡패들이 창문을 뜯고 넘어 와서 본드를 흡입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불을 켜는 순간 한 녀석이 칼을 들고 덤볐다.
발로 가슴을 차서 넘어뜨리고 칼과 본드, 등을 뺐었다.
사무실에 무릎을 꿇혀 놓고, 취조 아닌 취조가 시작되었다.
이름..., 나이..., 전화번호..., 학교...,
어느 것 하나 순순히 말하려는 녀석은 없었지만 하나같이 친구들의 기세에 겁을 먹고 결국 기본적인 자료가 마련되었다.
새벽이었지만 일일이 붙잡은 녀석들의 집에 전화를 해서 확인한 결과 대부분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한 아이들이었다.
기지바지를 입고 파마를 하고 있는 차림새를 보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린 아이들이었다.
“너네 짱이 누구야? 지금 어디 있어?”
계보를 파헤치면서 ‘제일 위에 짱을 만나야지 깨끗이 형선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끝까지 모른다고만 하는 녀석들 중에서 한 명을 밖으로 내보냈다.
“너네 짱 오라고 해”
“앞으로 30분 안에 오지 않으면 우리가 나가서 골목마다 뒤진다고 전해 알았지?”
한 20여분쯤 지나자 조용했던 교회 근처에 다른 때처럼 깡패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문 앞에 10여명..., 후문 쪽에 10여명..., 주차장에 10여명..., 어디서 나타났는지 금새 깡패들이 도로변에 늘어앉았다.
잡혀 있는 녀석 중에 한 명을 창가로 데려와서 내다보게 했다.
“저 중에 누가 짱이야?”
“없습니다”
“너 나가서 다 필요 없으니까 짱이나 데려 오라고 해”
한 10여분쯤 후에 새롭게 대여섯 명이 교회 앞에 나타났다.
우리가 붙잡고 있던 다른 녀석이 그 중에서 짱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는 세 명만 나간다”
“영국이가 나랑 같이 가 주고, 누가 한 명 더 갈래?”
영국이가 유도부 주장인 친구를 지목했다.
가까이 가서 만나기 때문에 ‘혹시라도 일이 생기면 유도기술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깡패들의 수에 비해 너무 적게 나간다고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깡패들의 짱과 내가 말하는 동안 주변을 주시하기만 하고 절대로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하라’고 당부를 했다.
정문 앞에서 한 무리의 깡패들이 막아섰다.
“비켜”
내 앞을 막아서는 놈들마다 영국이와 유도부 주장이 정리를 해 주었고, 극도의 신경전을 벌이면서 똑바로 걸어서 마지막에 나타난 짱과 그의 무리들 앞에 다다랐다.
이미 나와 친구들은 깡패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고, 교육관 입구에서는 나의 친구들이 여차 하면 뛰어 오려고 긴장을 늦추지 않은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깡패들의 짱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한 녀석이 심한 욕설과 함께 나를 막아섰다.
순간 유도부 주장이 제압을 했고, 영국이는 나에게 더 바짝 달라붙었다.
다시 한 녀석이 유도부 주장에게 덤벼드는데, 낯이 익어 보였다.
“너. 나 알지?”
분명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머뭇거리는 것이 분명히 나를 아는 것 같았다.
“너. 나 알아 몰라?”
재차 다그치며 묻자 그 녀석은 조그만 소리로 대답했다.
“압니다”
‘존대 말을 썼다! 그렇다면 이 녀석도 나보다 밑이라는 소린데...’
“비켜”
그 녀석은 내가 자기를 알아보는 줄 알고 당황해서 물러섰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중학교 후배였다.
결국 깡패들의 짱 앞에 섰다.
등을 돌리고 도로와 인도의 경계에 걸터앉아 있던 그 녀석이 고개를 돌려서 나를 쳐다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어~ 주형이구나?”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아무튼, 한결 마음이 놓였다.
“임마 너희들이 표적으로 삼은 아이가 내 동생이야”
“몰랐어. 나는 여기 자주 오지 않는데 애들이 하도 수선을 떨어서 오늘은 와 본 거야”
“내가 건들지 말라고 할게”
“그리고, 우리 교회에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 건들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우리 교회 근처에 나타나지 마”
“알았어. 내가 약속할게”
너무나 순순히 대답하는 자기들의 짱의 모습이 자존심 상했는지 갑자기 한 녀석이 ‘건방지다’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내 옆에 붙어 있던 영국이에게 제압되었고, 짱의 친구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짱에게도 내가 보는 앞에서 매를 맞았다.
이 정도면 이 후의 일은 안심을 해도 될 것 같았다.
형선이를 내려오게 했다.
그리고, 깡패들이 다 볼 수 있는 자리에 형선이를 세워 놓고 말했다.
“잘 봐!”
“이 아이가 내 동생이야”
“얼굴 똑똑히 기억해”
“니들, 앞으로 이 아이 앞에는 얼씬도 하지 마”
“절대로 건들지 마. 알았어?”
초등학교 동창인 깡패들의 짱이 한마디를 덧 붙였다.
“내 친구 말대로 해. 알았지?”
이렇게 막을 내린 깡패 소탕작전은 새벽5시가 돼서야 끝이 났다.
어떤 위험이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함께 해 준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여서 집에 보내고, 나도 집으로 돌아 왔다.
깡패들의 짱인 친구는 약속을 지켰다.
이 날 이후로 형선이는 예전처럼 안전하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다시는 교회 근처에서 깡패들을 볼 수 없었다.
어느 날 형선이가 집에 들어서자마자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형아! 형아! 집에 오다가 골목에서 깡패를 만났는데, 그 아이들이 오히려 나한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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