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민희가 물었다.
“아빠! 연탄이 뭐야?”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하나’ 생각하던 중에 마침 길가에 있는 세탁소에서 연탄난로를 떼면서 문 앞에 쌓아 놓은 몇 장의 연탄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희와 나는 한참을 연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연탄에 대해 얘기를 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동산고등학교 사진부 단장이었다.
1년에 한번, 꼭 여는 사진전에 출품할 작품을 위해서 여러 가지 구상을 해 보았지만 당시에는 마땅한 사진기 하나 없던 처지에 좋은 사진을 찍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식 사진 대회에 나갈 때는 사진관 아저씨의 사진기를 빌려서 참석하기도 했지만, 자체 사진전까지 그런 번거로움을 갖기는 싫었다.
결국은 조그마한 OLYMPUS PEN을 가지고 다니다가 우연히 쭈글쭈글하게 주름진 얼굴로 연탄을 갈고 계신 할머니를 찍었고, 흑백으로 인화해서 좋은 반응을 얻은 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도 다시 사진부 단장이 되었다.
당시 인천에 있는 고등학교 사진부의 전통은 1년에 한번 공보회관이나 화랑 같은 곳을 빌려서 사진전을 열고, 남․여 학교간에 서로 초대를 하면 꽃이나 선물을 가지고 참석한다.
그리고 참석한 학교 대표를 초대한 학교 대표가 안내하면서 작품 하나 하나를 설명해 주는 것이 보통이었고, 이렇게 맺어진 유대관계는 두 학교 사진부가 평소에 소래나 고궁 같은 곳으로 함께 촬영 여행을 다니는 돈독한 관계로 발전하기도 한다.
인천여고 사진부에서 초대를 해왔다.
나는 1․2학년 사진부원 60여명을 인솔하여 신포동에 있는 전시회 장소로 갔다.
전시회 장소는 2층에 있는 조그마한 화랑이었는데, 도착해 보니 이상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에 전시회 포스터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방문한 학교 수가 꽤 많았는데, 무슨 일인지 건물 입구에서 저마다 웅성거리고 있기만 할 뿐 2층으로 올라가려는 학교가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도착하자마자 2층 계단으로 올라가려는 나와 우리 사진부를 향해 '올라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까지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이유가 없었다. 올라가는 내내 계단 군데군데에 이상한 아이들이 서 있었지만 너무 당당하게 올라가는 나와 뒤따르는 일행들을 향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전시회장에 들어섰다.
썰렁한 전시회장 안에는 인천여고 사진부원들 외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면서 10여명의 남학생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왠지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인천여고 사진부원들이 다른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방명록에 싸인을 하고, 인천여고 사진부 단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했다.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우리 부원들을 소개한 후, 인천여고 단장으로부터 사진 설명을 듣고 있는데, 어떤 녀석이 앞을 가로막았다.
갑자기 가슴을 들이대고 얼굴을 맞대면서 막아서는 아이가 무척이나 불쾌했다.
“뭐야?”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이유를 짐작하면서 한 손으로 밀쳐냈다.
“아직 우리도 사진 설명 듣지 못했거든! 나갔다가 이따가 들어와”
그 아이가 말했다.
인천여고 사진부 단장이 당황해 하면서 ‘이러 지 말라’고 사정을 한다.
순간 나는 당황한 여학생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능을 자극 받았다.
“니들 뭐야?”
그런데 순간, 나는 험상궂은 4~5명의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그리나, 다음 순간에는 험상궂은 4~5명의 아이들이 깜짝 놀라며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학교 사진부 1학년 아이들이 유독 키도 크고 덩치도 컸는데, 하늘같은 선배를 둘러 선 불량배들을 보는 순간 오히려 그 아이들을 두 겹 세 겹으로 둘러싼 것이었다.
불량배들보다 머리 하나씩은 더 큼직한 나의 후배들의 기세에 그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고, 민망한 듯 슬금슬금 비집고 나가려 해도 나갈만한 틈이 생기지 않았다.
“저 아이들 다 내 보내고, 밖에서 못 들어오고 있는 아이들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해”
나의 믿음직한 후배들은 불량배들의 뒷덜미를 하나씩 잡아서 끌고 나갔고, 계단을 지키던 불량배들도 다 몰아냈다.
썰렁했던 사진전은 나의 후배들이 입구를 지키고 있는 덕에 활기가 넘치게 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나에게 고개를 들이밀던 아이는 제물포고등학교 ‘짱’이란다.
이 녀석은 인천여고 사진부 단장의 활동을 자주 보면서 일방적으로 짝사랑을 했단다.
그리고, 누구든지 남학생이 자기의 짝사랑과 다정하게 이야기하거나 함께 있는 것을 참지 못하고 방해하는 것이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한다.
이 날도 다른 학생들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고, 자기들만을 위해서 사진 설명을 해 달라고 떼를 쓰는 중인데, 나와 우리 학교 사진부가 성큼 들어 온 것이었다.
그래서 자기의 짝사랑이 친절하게 사진 설명을 하는 대상이 된 나를 보기 좋게 쫓아 보내려고 했던 것이다.
이 날의 일은 순식간에 인천에 있는 모든 학교 사진부에 소문이 났고, 이후로 나와 우리 학교 사진부는 어느 학교 사진전이든지 VIP로 초대되었다.
그리고, 한 주 후에 인천여고 사진부와 우리학교 사진부는 가까운 교외로 동반촬영을 나갔다.
나는 3학년 때도 역시 단장이 되었고, 사진전도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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