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에 차를 달리면서 차창 밖을 내다볼 때, 간혹 아이를 업고 추운 거리에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의 모습을 지나칠 때가 있다.
‘얼마나 추울까!’
한 여름에도 아이와 함께 차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나칠 때마다 ‘얼마나 더울까!’하는 생각이 들어서 안스러운 마음으로 한번 더 쳐다보게 된다.
차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유독 아기 엄마와 등에 업혀 있는 아이가 눈에 띄고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에게도 고만한 딸과 늘 딸을 데리고 다니는 아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좋은 차를 주셔서 늘 시원하고 따뜻하게 다닐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현재 내가 타고 다니는 차는 싼타페 / 경기51모1681 / 검정색.
민희는 이 차가 자기의 차라고 한다. 주일이면 명실공히 나의 차는 민희의 놀이터가 되는 동시에 방이 된다. 차안에는 이불이며, 베게며, 책들과 각종 간식까지, 그리고 VCR까지 완전히 민희의 집이 맞다.
민희는 애니매이션 영화인 「뮬란」을 제일 좋아한다. 자기가 부르는 제목은 「심술이」 “엄마 심술이 틀어줘. 4번” 하면 뮬란을 틀어달라는 말이다.
언제나 차를 탈 때, 민희는 문을 열어 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안아서 태우라고 한다. 최소한 손이라도 잡아줘야지 차에 오르는 민희.
집 앞에 오면 으레히 잠자는 시늉을 하면서 코고는 소리까지 내는 민희의 속셈은 잠자는 척 하면 아빠가 안고 들어가서 자리에 눕혀주고, 옷도 벗겨주고 이불을 덮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민희는 이렇게 해 주는 것을 매우 행복해 한다.
깨어 있어도 민희는 신발 신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빨리 신발을 신으라고 하면, 자기 입으로 자기는 공주님이란다. 그리고는 말한다. “아빠 문열어... 업어... 공주님은 원래 그런 거야”
공주님은 할아버지 댁에 가서도, 큰 아빠 댁에 가서도, 어디를 가던지 신발 신기를 거부하면서 빨리 안던지 업으라고 애교를 부리면서 명령한다. 그러면 아빠는 언제든지 시종이 돼서 공주님을 업는다. 이런 민희를 보면서 어른들은 ‘민희는 신발이 필요 없는 아이’라고 부르신다. 민희는 신발이 참 많다. 그런데 민희는 신발이 필요 없는 아이다.
안식년 휴가를 얻어서 한달 동안 미국에 갔을 때도 민희는 여전히 신발이 필요 없는 아이였다. 하와이에서도... 샌프란시스코에서도... LA에서도... 라스베가스에서도... 캘리포니아 북부를 돌아다니면서도... 미국서부 일주를 마쳤건만 민희는 미국 땅을 밟아 보지 못했다. 언제나 아빠에게 안기던지, 목마를 타던지, 업히던지, 아니면 차를 타고 다녔다. 아마 민희가 밟아본 미국 땅은 호텔과 화장실, 그리고 해변과 풀장이 전부인 듯...
요즘은 이미 20㎏이 넘어버린 공주님을 모시고 다니는 것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도 아빠는 날마다 무럭무럭 자라나면서 무거워지는 딸이 있어서 행복하다.
민희는 복이 많은 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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