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타임머신 / 아빠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정-어버이날
2000년의 어린이날은 금요일이었다.
하루 전날, 대학원 수업을 마치고 늦은 밤이지만 어렵게 장만한 딸의 어린이날 선물을 아침 일찍 주면서 말했다.
“민희야! 오늘은 너의 날이란다. 어린이날 축하해!”
이날 내가 딸에게 처음으로 준 선물은 ‘푸우 인형’이다.
주머니사정이 여의치는 않았지만 딸이 맞는 첫 번째 어린이날, 아빠가 주는 첫 번째 선물을 싼값에 파는 모조품으로 주고 싶지는 않았다.
당시의 나로서는 거금을 투자해서 오리지널 월트 디즈니사의 인형으로 구입했다.
인형을 손에 쥐고는 태어난 지 6개월밖에 안 되는 녀석이 얼마나 좋아하던지, ‘이놈이 벌써 선물의 의미를 아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민희는 자라면서 늘 유치원에 가고 싶어했다.
그것도 은행유치원에 꼭 가야 한다고 늘 말을 했다.
사촌언니인 서희, 서연, 하은이 모두 은행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민희는 언니들처럼 노란 가방을 메고 은행유치원에 가는 것이 꿈이었다.
“아빠! 나도 이~ 다음에 은행유치원에 꼭 보내 줘~ 응?”
그리고, 드디어 2003년도 3월이 되면서 민희는 꿈에도 소원이던 유치원생이 되었다.
언니들이랑 같이 노란 가방을 메고, 경기도 시흥시 은행동 321-1에 있는 은행유치원에 다니게 된 것이다.
한국 나이로는 다섯 살이었지만 만으로는 태어난 지 3년4개월밖에 되지 않은 조그만 녀석이 유치원에 간 것이다.
자기가 너무 좋아 하니까 보내 주기는 했지만 아침마다 일어나느라 힘들어하는 녀석을 보면서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그 해 5월 10일 토요일.
출근을 해서 얼마나 지났을까?
사무간사가 편지가 왔다며 우편물을 하나 전해 주었다.
건네 받은 노란색 봉투 위에는 무궁화가 그려져 있는 190원짜리 우표에 2003년 5월9일자 소인이 찍혀 있었고, 받는 사람 난에는 ‘예쁜 제민희의 아버님’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유치원에서 집으로 우편물을 보내지 않고 왜 사무실로 편지를 보냈지?’
무심코 봉투를 뜯고 내용물을 꺼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도저히 표정관리가 되지를 않았다.
“도대체 뭐 길래 그렇게 좋아하세요?”
“목사님! 왜 그러세요? 네?”
“뭔지 저도 좀 보여 주세요”
사무실에서는 갑자기 환하게 웃는 웃음을 그치지 못하는 나를 보고 무척이나 내용물을 궁굼해 했다.
그것은 민희가 처음으로 우표까지 붙여서 아빠에게 보낸 편지였다.
빨간색 하트 종이 안에 하얀색 종이를 붙여서 민희가 직접 그림 편지를 쓴 것이다.
“짜~식! 아직 글씨도 제대로 모르는 녀석이 ‘사랑해요’라고 직접 썼네!”
얼마나 뿌듯하고 좋던지 나는 그 날 만나는 사람마다 딸의 편지를 보여 주었다.
어버이날이 음력 4월8일이라서 공휴일이었는데, 아마도 다음날 아침에 유치원에서 카드를 만들어서 보낸 것 같았다.
‘민희가 많이 컸구나! 편지도 보낼 수 있고...’
우표까지 붙여서 서울로 배달된 편지의 감동은 집에 돌아갈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민희에게 또 한번 감동의 선물을 받았다.
민희녀석이 종이컵을 잘라서 만든 카네이션을 들고 와서는 직접 달아주는 것이었다.
가슴을 두어 번 찔리기는 했어도 너무 행복했다.
다음날은 어버이주일 예배를 드리는 날이었다.
교회에서 준비해준 카네이션을 책상에 올려놓고, 민희가 종이컵을 잘라서 만들어준 카네이션을 목사 까운에 달고서 1부 예배 설교를 했다.
“제 딸아이가 처음으로 만들어서 달아준 카네이션입니다. 저는 올 해 어버이주일에 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까운에 달린 것이 무엇인지 궁굼해 하던 성도들은 성가대 석에 앉아 있는 민희를 쳐다보면서 박수를 쳐주었다.
그 순간 민희가 고개를 돌리고 아빠를 쳐다봐서 눈이 마주쳤다.
민희녀석도 자기가 만들어준 카네이션을 아빠가 가슴에 달고 설교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좋아하던지...
월요일이 지나고, 화요일이 되었는데도 어버이주일의 감동은 좀처럼 식지를 않았다.
이번에는 내가 민희에게 답장으로 카드를 만들었다.
사랑하는 민희에게.
지난 어버이날
민희가 엄마․아빠를 예쁘게 그려넣고
“사랑해요” 라고 쓴 엽서를 받고
아빠는 너무나 감격했단다.
아빠는
민희가 아빠의 딸인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해.
오늘도 잠들어 있는 민희를 보면서
건강하게 부쩍 자라난 민희가 대견스럽기도 하고,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얼굴도 비비고 뽀뽀도 해 주었는데
민희는 잠들어서 몰랐지?
아빠는 민희를 주신 하나님께
항상 특별한 감사를 드린단다.
민희야!
늘 하나님이 주시는
웅대하고 높은 꿈과 이상을 가지고 자라나거라.
아빠가 민희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후원해 줄게.
아빠는 이 세상 누구보다
민희와 엄마를 사랑한단다.
“민희야! 사랑해!”
2003년 5월14일
사랑하는 아빠가
“아빠! 뭐라고 쓴 거야? 읽어 줘 응?”
민희는 한동안 아빠의 편지를 매일 읽어 달라고 했다.
아빠도 민희가 보내준 편지를 매일 꺼내서 보았다.
그리고, 엄마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행복해 했다.